2023. 4. 4. 20:24ㆍ패션 마르띠나
1. 패션 제국의 황제 아르마니
아르마니는 이탈리아 명품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브랜드 중의 하나입니다.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완벽주의 성향과 한결같은 스타일을 고집하며 자신의 살던 시대의 통념을 거슬러서 위대한 명품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현존하는 디자이너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브랜드를 정상으로 이끌었습니다.
항상 짙은 푸른색 상의에 주름 하나 없는 바지를 입고 하얀 스니커즈에 태닝 한 피부에 하얀 머리를 빗어 넘긴 스타일로 스타일 아이콘이 되었으며 1934년 생으로 아흔이 넘은 할아버지인데도 지금까지 계속 멋있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르마니의 이름의 내건 브랜드들이 엄청나게 많은 것을 이루며 옷을 물론, 속옷, 향수, 화장품, 액세서리, 가구, 인테리어, 식음료, 두바이의 세계 최고층 빌딩의 부르즈 할리파에 있는 아르마니 호텔까지 프랑스에 밀려 존재감이 미미하던 이탈리아 패션을 세계 무대로 이끌고, 본인 스스로도 10조 넘는 자산을 일군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으며 아르마니 패션제국의 황제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2. 아르마니의 시작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1934년 이탈리아 북부의 피아첸차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주말마다 동네 극장에 갔는데 어린 아르마니는 배우들의 스타일은 보면서 부족하고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생각하며 영화를 봤다고 합니다. 여자친구의 헤어를 고쳐주거나 스타일을 조언해 주며 패션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불필요한 것을 계속 제거하고 개선하면서 심플함과 우아함을 추구하게 됩니다.
손재주가 좋고 그림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긴 했지만 디자이너는 생각도 못하고 당시에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직업을 얻기위해 의대에 진학합니다. 그러나 해부학 시험을 앞두고 군대에 가게 되고 의무실에서 환자들에게 주사를 놓다 보니 의사와 맞지 않다는 것들 깨닫고 의대를 그만두고 백화점 광고 부서에 취업에 성공합니다.
돈이 필요해서 들어갓던 백화점에서 아르마니는 성장하게 됩니다. 백화점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스타일은 접하고 상류층의 취향을 알게 되고 디자이너들의 일들을 도우며 해외 출장도 따라다니면 견문을 넓히던 과정 속에서 홍보실장의 소개로 니노 세루티가 새로운 남성복 라인을 론칭하는데 디자인 보조로 일자리를 옳기게 됩니다.
디자인을 정식으로 배운적은 없지만 개인적인 안목과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단기 트레이닝을 거쳐서 아르마니는 정식 디자이너가 됩니다.
3. 디자이너 아르마니
가벼운 소재, 차가운 색감, 그리고 어깨 패드등의 구조물을 없앤 자연스러운 디자인 고급 맞춤복과 싸구려 기성복만 있는 사이 틈새시장을 공략한 니노 세루티의 히트맨 브랜드의 성공으로 아르마니도 명성을 얻게 됩니다.
전후의 이탈리아 경제가 재건되고 60년대를 지나면서 경제력을 갖춘 사람이 늘고 표현 욕구도 늘고 고급 맞춤복과 싸구려 기성복 사이의 틈새시장이 기존시장보다 오히려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들도 잘 입고 싶고 돈을 번 사람들은 더 잘 입고 싶은 심리가 늘어나면서 그동안은 개별 부띠끄에서 머물렀던 패션업이 패션사업과 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아르마니는 작은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쉴새없이 일하면서 경력을 쌓습니다. 다른 브랜드들의 요청을 받아 여성복도 만들고 그렇게 백화점과 남의 브랜드 밑에서 일하지 15년이 넘고 사십에 이르러 아르마니는 니노 세라티를 떠나서 독립을 결심합니다.
아르마니가 자신을 이름을 회사를 차린것은 1975년의 일이었습니다. 아르마니는 자존심을 지켜나가며 회사를 지키기 위해 로에버, 제냐등의 다른 브랜드 외주를 하면서 그러면서 동시에 가기 컬렉션을 계속 준비합니다.
4. 이탈리아 패션의 상징
1975년 여름에 이듬해 봄 여름 컬렉션을 내놓았는데 처음부터 주목을 받게 됩니다. 패션계의 고정관념과 같던 남녀의 스타일을 섞으면서 정형화된 기존 패션에 얽매이는게 아니라 사람들의 변화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가는 아르마니의 남성복, 여성복 스타일 모두에 언론 소비자들이 열광했습니다. 그리고 아르마니는 누구보다 브랜드 이미지의 중요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초장기 큰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벌는 돈의 절반을 광고비에 투자했고 당시에 프랑스를 이길 만한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가 없었으며 자신의 브랜드를 굳건하게 뒷받침해 줄 이미지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섬유 업체들로부터 투자를 받고 날개를 달아서 급성장하던 아르마니는 70년대 후반에 미국에서 크게 성공하게 됩니다. 할리우드 셀럽들의 사랑을 받으며 세컨드 라인과 향수도 출시하며 화려한 장소에서 셀럽들과 파티를 열며 화려한 조명을 받으면서도 아르마니는 은둔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 일에 몰두하며 아르마니가 미국에서 프랑스 브랜드보다 못하다는 이미지의 이탈리아 패션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 놓게 됩니다.
얼마나 위상이 대단했는데 프랑스의 크리스찬 디올에 이어서 타임 매거진 표지에 25년 만에 처음 등장한 유럽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세계인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주도했으며 많은 위기와 변화속에서 현재까지 이탈리아 브랜드의 자존심을 지켜 나가며 변화하는 패션산업 속에서도 아르마니만의 고유의 브랜드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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