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25. 17:04ㆍ패션 마르띠나
루이비통의 탄생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루이비통은 목공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도우며 목공기술을 익히게 됩니다. 어린 시절 루이비통은 대도시인 파리에 대한 동경과 로망으로 집에서 400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파리로 향하게 됩니다. 집을 나선 지 2년이 지나서야 파리에 도착한 그는 그 당시 파리에서 가방을 제작하던 '무슈 마레샬'이라는 유명한 기술자의 수습생으로 들어가 17년간 일을 하게 됩니다.
주로 부자, 귀족들이 여행을 할 때 사용하는 여행객들의 트렁크의 만들어주고 짐을 싸주는 일을 하면서 유난히 솜씨가 좋았던 루이 비통은 귀족들 사이에 금방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3세의 아내 외제니 황후의 트렁크를 만들고 짐을 싸주게 되면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녀의 전담 포장자로 일하게 됩니다. 황후는 그의 재능을 특별히 여겨 후원을 해주었고 그 후원 덕분에 파리 시내에 그의 이름을 붙인 포장가게를 열게 됩니다. 그것이 루이비통 역사의 시작이 됩니다.
그 당시의 여행용 트렁크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트렁크와는 모양이 많이 달랐습니다. 지금의 직사각형 형태의 가방과는 달리 둥근형태의 볼록한 가방이었는데 이것은 가방이 맨 밑에 깔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고 또한 비가 오거나 물이 닿았을 때 흘러내리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방의 형태는 가방을 세워두거나 쌓아두는 것이 매우 어려운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루이비통은 그러한 문제점을 보완한 방수처리가 된 캔버스 재질의 직육면체 모양의 가방을 제작하게 됩니다.
루이비통이 새롭게 제작한 여행용 가방은 정말 가벼웠고 쌓아두는 것도 편리해서 여행을 자주 하는 부유층에 큰 인기를 끌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루이비통과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은 아들 조르쥬 비통과 손자 가스통 비통으로 이어지는 가족경영을 통해 꾸준한 발전을 이루며 세계 최초 최대의 여행용 가방업체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가족경영의 한계에 접어들었을 무렵, 유럽의 트럼프라 불리는 베르나르 아르노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는 주류업체인 모에헤네시와 합병하자는 제안을 루이비통 측에 하게 되고 안정적인 경영을 위해 루이비통은 그 제안을 승낙하게 됩니다. 모에헤네시 그룹과 루이비통이 합병하면서 거대 럭셔리 그룹인 LVMH가 설립되고 그들의 합병은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르노는 겉으로는 동업을 하는것처럼 연기를 하며 18억 달러의 자금으로 LVMH의 주식을 24프로나 사들였고 그 당시 경영에 참여하고 있었던 가스통 비통의 사위인 앙리를 회장 자리에서 밀어내기 위한 음모를 꾸몄습니다. 결국 법정 싸움까지 가게 되었는데 법정은 아르노의 손을 들어주어 앙리는 억울하게 회장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루이비통 그룹에 루이비통 가문의 사람이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되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루이비통은 루이비통 가문에서 빼앗은 아르노에 의해 진정한 변화를 맞으며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됩니다.
루이비통의 새로운 도약
아르노가 회장에 오른 후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는데 그가 가장 먼저 했던 것은 당시 천재 디자이너였던 마크 제이콥스를 루이비통의 아트 디렉터로 영입하면서 가방만 만들던 루이비통을 패션제국으로 변모키신 것입니다. 마크제이콥스는 브랜드의 고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젊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가미하며 의류, 신발, 주얼리 컬렉션으로 상품영역을 확장시켰습니다. 마크 제이콥스는 모노그램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루이비통을 더 젊은 브랜드로 만들며 활력을 주었으며 무라카미 다카시, 스티븐 스프라우스 등 아티스트와 협업하여 기존 브랜드가 가지고 있던 클래식한 이미지를 좀 더 젊고 트렌디하게 바꾸는데 성공을 하였습니다.
마크 제이콥스가 떠난 후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렌시아가의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영입되었고 니콜라는 루이비통에 절제된 세련미와 여성미를 가미시키며 루이비통에 합류한 지 1년 만에 월 스트리트 저널이 선정하는 올해의 패션 혁신가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됩니다.
또한 루이비통은 역사상 최초로 흑인 디자이너를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하면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는데 그는 오프화이트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였습니다. 창의적이 디자인과 아티스트와 협업으로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2021년 지병이었던 암으로 세상을 떠나 패션업계와 많은 이들에게 슬픔을 주기도 했습니다.
아르노의 루이비통은 과도한 상업화와 많은 물량의 제작으로 과거보다 품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아직도 건재하게 명품 브랜드 가치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여전히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명실상부한 최상의 명품 브랜드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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