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31. 20:23ㆍ패션 마르띠나
1. 파리의 브랜드, 셀린느
파리하면 생각나는 브랜드이며 파리의 개선문을 둘러싸고 있는 쇠사슬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시킨 브랜드의 로고로 유명한 브랜드가 있습니다. 샤넬이나 디올 같은 주요 명품 브랜드는 브랜드의 설립자가 유명하지만 이 브랜드는 설립자보다 오히려 그 뒤를 이은 디자이너들이 유명합니다. 그중 한 명이 스스로 일을 놓고 쉬러 가도 그녀의 팬들이 애타게 기다린다는 피비 파일로가 있었습니다. 그녀 특유의 터틀렉, 실크 셔츠, 아디다스의 스탠스미스는 그녀의 상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트리오페, 캔버스, 클래식백, 러기지 백으로 유명하고, 21세기 들어서 더욱 빛나는 디자이너의 이름으로 장식된 브랜드, 바로 셀린느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2. 셀린느의 시작
세계 최대 명품제국 LVMH에 속해 있는 셀린느는 블랙핑크 리사의 글로벌 엠배서더를 발표하면서 흑백 사진 몇 장을 공개했는데 크리에티브 디렉터 에디 슬리먼이 직접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사실 셀린느 브랜드는 아이들 맞춤형 고급 신발을 만들면서 시작했습니다.
1945년 셀린느 비피아나가 남편과 함께 고급소재로 아이들 신발을 만들며 창업을 했습니다. 아내는 디자인을 하고 남편은 영업을 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고 팍팍했던 분위기가 풍요로워지면서 맞춤용 어린이 신발이 잘 팔리게 되면서 매장이 늘어납니다. 아이들 신발이 반응이 좋아지면서 성인용 신발과 가방도 만들게 됩니다. 설립자인 셀린느 비피아나는 여성을 위한 편안하고 실용적인 제품을 만드는데 집중했다고 합니다. 브랜드가 점차 커지면서 브랜드를 상징하는 로고도 만들고 창업 10년 뒤부터는 드디어 여성복도 출시하게 됩니다. 그녀는 세련된 여성을 위한 고급스럽지만 편안함을 추구했습니다.
셀린느 비피아나가 70년대 차를 타고 가다가 개선문을 지나는데 차가 고장 나서 내리게 됩니다. 우연히 차에서 내려서 개선문을 둘러싼 쇠사슬을 보게 되는데 쇠사슬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 셀린느를 상징하는 로고를 탄생시킵니다.
이 시절 셀린느 매장은 프랑스 곳곳으로 확장되고 프랑스 안에서는 패밀리 비즈니스로 밖에서는 일종의 라이선스 사업으로 해외 진출도 가속화합니다. 다른 어느 명품 브랜드보다 아시아 시장에 공을 들였으며 특히 일본에서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고 합니다.
3. 셀린느의 그녀, 피비 파일로
그러나 80년대 이르러 창업자 부부는 60대에 접어들었고 은퇴를 생각할 때쯤 지금의 LVMH 회장의 되는 베르나르 아르노에게 지분의 3분의 1을 넘기게 되었고 곧이어 3개월 뒤 아르노는 창업자 부부를 쫓아내게 됩니다. 주인이 바뀐 셀린느는 해외 라이선스 사업을 정리하면서 브랜드 가치를 높였으며 1997년에는 마이클 코어스를 디자인 책임자로 영입해서 여성 기성복, 액세서리, 가방 등의 성공으로 브랜드의 위상을 높입니다.
마이클 코어스가 떠나고 두 명의 디자이너의 짧은 임기를 거친 후 2008년 가을 셀린느는 클로에 디자이너의 책임자였던 피비 파일로를 크레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합니다. 끌로에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두고 아이를 낳기 위해 잠시 휴직을 취하던 핫한 디자이너였던 피비 파일로가 선택한 브랜드가 바로 셀린느가 됩니다. 피비 파일로가 셀린느에 머물었던 10년동안 그 유명한 러기지백을 비롯해서 메가 히트 상품들을 만들어 내면서 매출을 세배 이상 끌어 올렸으며 매출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수많은 여성들에게 셀린느와 피비 파일로라는 이름을 각인 시켰습니다. 미니멀 시크, 미니멀리즘의 천재로 대중들의 사람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셀린느를 입는 모든 여성들이 강인함과 자신감을 느끼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이힐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성적 이미지를 타파한 피비 파일로의 디자인에 전 세계가 열광했습니다.
4. 셀린느의 새로운 시대
그렇게 존경 수준의 사랑을 받았던 피비 파일로가 셀린느와 함께한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하면서 2017년 브랜드를 떠났을때 팬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피비 파일로가 떠난 셀린느에는 디올과 생로랑을 거친 에디 슬리먼이 브랜드를 더 성장시킬 거라면서 디자인 책임자로 영입됩니다. 이것은 팬들에게 또 한 번 충격을 줍니다. 그동안 셀린느하면 피비 파일로였는데 그 기조를 완전히 바꿔버릴 만큼 자기 색이 강한 디자이너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에디 슬리먼은 피비 파일로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로고도 바꿔버립니다. 전통의 여성복 브랜드였는데 남성복도 만들며 나는 전임자를 따라 하려고 온 게 아니다라고 말하며 기존 팬들의 반발을 사게 됩니다. 그러나 팬들의 비판과 고전 속에서도 에디 슬리먼의 셀린느는 매출이 강력하게 증가하고 있고 여전히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으며 셀린느의 새로운 시대를 기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패션 마르띠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아한 여성미의 상징 : 크리스찬 디올 (0) | 2023.04.20 |
---|---|
이탈리아 명품 황제 : 조르지오 아르마니 (0) | 2023.04.04 |
명품 위의 명품 : 에르메스 (0) | 2022.12.26 |
영원한 스타일 아이콘 : 코코 샤넬 (0) | 2022.12.25 |
패션의 수많은 최초를 남긴 디자이너 : 입 생 로랑 (0) | 2022.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