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8. 20:17ㆍ패션 마르띠나
1. 패션을 사랑한 소년
2010년 2월 11일, 세계의 각종 언론들이 동시에 충격적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현대 패션계를 이끌어 가던 천재적인 디자이너 중의 한 명인 알렉산더 맥퀸이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는 보도였습니다. 맥퀸의 트위터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수많은 셀러브리티들은 패션계를 이끌던 큰 빛을 잃은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영국 런던의 평범하고 검소한 가정에서 태어난 맥퀸은 가족 중 누구도 예술 계통의 사람이 없었음에도 그는 어릴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그런 맥퀸을 여자 같다며 놀리며 비웃었으나 그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이를 밀어붙이는 기백도 있었습니다. 16세가 되던 해 일반 학교를 그만두고 기술 전문대학의 예술 과정 야간학부를 이수했습니다. 졸업 후 맥퀸은 유명한 양복점에서 옷 만드는 실력을 쌓아갔고 유명 디자이너들의 어시스트가 되어 런던과 밀라노에서 다양한 기술을 습득해 나갑니다. 몇 년간 이렇게 경력을 쌓으며 고급 기술을 마스터한 맥퀸은 예술학교에서 패턴과 재단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세인트 마틴 패션 학교에 갔다가 디자인 석사 과정을 발견하고 디자인 정식 교육을 받게 됩니다.
2. 이사벨라와의 운명적 만남
그리고 1992년 졸업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때 처음으로 알렌산더 맥퀸이 패션계의 주목을 받게 되는 일생일대의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영국의 유명한 패션 에디터이자 스타일 아이콘이었던 이사벨라 블로우가 알렉산더 맥퀸의 컬렉션을 보고 한눈에 반하고 맥퀸의 졸업 작품들을 통째로 구입하기도 마음먹습니다. 그녀는 맥퀀과의 연락을 위해 매일매일 수도 없이 전화를 합니다. 그녀가 끈질기게 전화한 덕분에 처음에 전화를 받지 않았던 맥퀸과 전화 연결이 되었고 그녀는 맥퀸의 작품을 전부 구입하게 됩니다. 패션계의 거물 이사벨라가 맥퀸의 옷을 모조리 사들였다는 소문이 퍼지자 언론은 알렉산더 맥퀸이라는 신인 디자이너에게 큰 관심을 보였고 이러한 관심 속에서 그는 곧 자신의 브랜드 '알레산더 맥퀸'을 론칭하게 됩니다.
3. 악동의 천재성
알랙산더 맥퀸만큼 파격적이고 눈에 익지 않은 의상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의 의상은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공격적이고 극단적이며 굉장히 과격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 그는 관습을 거부하는 극적이고 과장된 패션쇼 콘셉트로 파장을 일으켰고 그 안에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는 했습니다.
1999년 봄, 여름 컬렉션의 엔딩은 오늘날까지도 가장 멋진 장면으로 손꼽힙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모델이 무대 중간에 서 있고 양쪽에 세워진 로봇들이 드레스에 페인트를 뿌리는 장면을 연출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이 로봇은 자동차 공장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간과 기계의 관계 나아가 대량 생산되는 몰개성 한 패션을 표현한 것입니다.
파격적인 스타일만큼이나 유명했던 것은 그의 성격이었습니다. 그는 굉장히 까다롭고 건방지며 불같이 화를 내는 성격이었는데 나쁜 소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완벽한 테크닉과 천재적인 창의력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미워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의 유별난 성격은 맥퀸을 정의하는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습니다.
맥퀸은 자신의 브랜드를 유지하면서 지방시의 새로운 디자이너가 되었는데 그의 첫 번째 지방시 오트 꾸튀르 컬렉션은 실패를 기록했습니다. 고상함의 끝을 달리는 지방시의 테두리 안에서 맥퀸의 파격적인 창의력은 계속 구속받을 수밖에 없었고 맥퀸은 지방시를 벗어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던 중 PPR 그룹이 맥퀸의 지분을 사들이며 새로운 파트너가 되었고 때 맞춰 지방시와의 계약도 만료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맥퀸은 누구의 간섭도 없이 오로지 "알렌산더 맥퀸"에만 전념하여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창의력을 아낌없이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패션계를 이끌어 가는 탑 디자이너 중 한 명이 되어 큰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4. 비운의 천재
2007년 5월, 충격적인 소식이 행복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던 맥퀸을 순식간에 절망에 빠트렸습니다. 맥퀸의 졸업 작품을 구입한 후 15년 동안 오랜 우정을 이어오던 이사벨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게다가 하필 이사벨라와 맥퀸 사이에 불화가 있던 시기라 그녀의 죽음과 관련된 루머가 맥퀸을 더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사벨라가 자살한 지 3년 후에는 맥퀸의 어머니마저 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어머니와 매우 가까웠던 맥퀸에게 이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고 깊은 슬픔과 혼란 속에서 불안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자신을 둘러싼 외로움과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어머니 장례식의 열리기 하루 전 그는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맙니다.
화려했던 전성기와 비극적 슬픔을 모두 겪고 세상을 떠난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 그는 남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천재였습니다. 현대 복식사의 큰 반향을 일으킨 그의 이름은 패션사 한 페이지에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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