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위기 : 구찌의 구원자 '톰 포드'

2022. 12. 20. 18:40패션 마르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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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톰 포드의 시작

  이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활발하고 스타일리시한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항상 남들 눈에 보기 싫은 옷을 입는 것은 매우 무례한 행동이며 복장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던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인해 소년은 어릴 적부터 그날 입을 옷을 고민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심지어 소년의 어머니는 고작 열두 살이었던 그에게 구찌 로퍼를 선물할 정도였습니다. 이때 이 어린 소년은 몰랐을 것입니다. 자신이 장차 패션계에 엄청난 바람을 일으키게 될지 말입니다.

 이 소년이 바로 몰락해 가던 구찌를 화려하게 부활시킨 현대 패션의 전설, 톰 포드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뉴멕시코 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톰 포드는 열일곱 살 때 뉴욕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그는 취미로 연기 수업을 들으며 대학 생활을 즐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톰은 친구들과 당시 뉴욕의 전설적인 나이트클럽 스튜디오 54에 가게 되었는데 클럽의 화려함과 음악에 빠져 허구한 날 클럽을 다니시 시작했습니다. 동성애 성향이 드러난 것이 이때 즈음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해 학교를 자퇴하고 패션모델을 시작했는데  이 재주 많은 청년은 모텔이 되자마자 단번에 12개가 넘은 TV CF를 따낼 정도였습니다. 한편 모델 활동을 하면서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는 디자이너서의 재능을 발견한 그는 디자인 공부를 하기 위해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의 전공은 패션이 아닌 인테리어였는데 우연찮게도 졸업 학기에 파리로 건너가 끌로에의 홍보실에서 학생 인턴을 하게 됩니다. 톰이 맡은 일은 끌로에의 의상과 액세서리의 사진을 정리하는 것이었는데 결국 그것이 그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2. 패션 세계에 빠져들다 

패션계에서 일하기로 결정한 그는 1986년 파슨스를 졸업하자마자 뉴욕에 불을 켜고 패션 관련 일을 찾게 됩니다. 그의 전공의 패션이 아닌 인테리어였기 때문에 그는 면접 때 자신의 전공을 교묘히 숨기고 끌로에에서 일할 때의 자신의 지위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는 면접관의 마음을 교묘히 사로잡는데 선수였습니다. 결국 패션의 경험이 전무하던 톰 포드가 당시 미국 인기 디자이너였던 캐시 하드윅의 디자인 어시스턴트 자리를 얻게 되었고 2년 후 1988년 페리 엘리스의 옮겨 마크 제이콥스와 2년간 함께 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톰 포드는 미국 패션계에 점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때마침 톰 포드가 유럽 패션계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쫄딱 망할 위기에 처해 있던 구찌는 브랜드를 새롭게 정비하는 차원에서  여성 기성복 파트 디자이너를 찾고 있었고 1990년에 패션계의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톰 포드가 구찌의 여성복 디자이너로 고용되었습니다. 애송이 미국인 디자이너에게 전통 있는 이탈리아 패션 하우스 구찌를 맡기는 것은 구찌 입장에서도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습니다.

 

3. 구찌의 부활

그러나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급 추락하고 있던 구찌의  여성복 라인이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은 톰 포드는 이때부터 초고속 승진을 하기 시작합니다. 여성복 라인을 맡은 지 6개월 만에 남성복, 곧이어 신발 라인을 맡게 되었고 마침내 1994년 디자이너로서 가장 놓은 자리인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톰 포드에게 잠깐의 위기가 있었으니 바로 구찌 가문의 유일한 후손, 마우리치오 구찌 때문이었습니다. 마우리치오는 톰 포드의 디자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마우리치오에 의해 거의 해고될 뻔한 적도 있었으나 구찌의 새로운 CEO였던 도매니코 드솔레는 톰 포드의 든든한 지원자이자 파트너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사업을 맡은 도매니코와 디자인을 맡은 톰 포드로 이루어진 환상적인 콤비의 활약으로 파산 직전이던 구찌는 2003년 3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였고 구찌의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성공한 가장 큰 요인 중에 하나는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정확히 잡아내는 천부적인 감각이었습니다. 그는 대중을 취향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말 그대로 철저한 상업주의적 패션 디자이너였습니다. 또 못 말리는 위커 홀릭이기도 한데 하루에 고작 3시간밖에 자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자다 깼을 때는 아이디어가 번쩍 떠오를 경우를 대비해 항상 침대 옆에는 메모지를 구비해 두었다고 합니다. 

 

4. 새로운 도약

 그러던 2003년 11월 톰 포드는 PPR그룹과 불화로 2004년 가을 겨울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구찌와 이별하게 됩니다. 이는 구찌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2005년 톰 포드는 구찌의 그늘을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자신의 이름을 건 '톰 포드'를 만들 것입니다. 자신의 브랜드 '톰 포드'를 통해  홀로서기를 시작한 그는 선글라스와 남성복에서 큰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오늘날 그는 다른 브랜드를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자신의 브랜드를 위해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의 패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전 세계가 그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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